[기고]기존 방송사들이 OTT 확산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 가장 뛰어난 한류 콘텐츠 제작사로서의 강점 살려가야-
지상파방송사들은 요새 고민이 많다. 1994년 종합유선방송이 출범한 이래 국내 유료방송 가입자 규모는 벌써 2천7백만을 넘어서고 있고, 등록된 PP 사업체수는 235개 사가 넘을 정도로(‘14년 5월 기준) 시청자들의 눈과 귀는 더 이상 지상파방송이 제공하는 채널들에만 머무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근 맹렬히 증가하고 있는 모바일이나 인터넷을 통한 동영상 시청, 즉 이른바 OTT(over the top) 비디오 서비스 시청 행태는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원래 OTT는 범용 인터넷망을 통한 시청각서비스를 통칭하는 용어지만, 국내에서는 특히 광대역 인터넷망을 통한 동영상 서비스를 지칭하는 용어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그간 혼용되던 ‘N-스크린’ 서비스보다 더 많이 사용되어 점차 새로운 비디오 시청행태를 대표하는 용어로 자리잡는 느낌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OTT라는 용어보다 ‘스마트미디어’라는 용어를 사용하려는 흐름도 존재하는데, 아마도 세계 최대의 평판TV 제조 업체를 두 개나 거느린 특수 환경에서 ‘스마트TV’라는 말로서 TV의 진화를 설명하고자 했던 일부의 바람이 반영된 결과 아닌가 한다.)
어쨌거나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세계 OTT 업체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넷플릭스(Netflix)와, 넷플릭스의 급성장 이전에 세계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를 대표하고 있던 유투브(Youtube)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탓에 미국 FCC(연방통신위원회)는 우리의 유료방송에 해당하는 MVPD(Multichannel Video Programming Distributors)에 OTT(미국에서는 Online Video Distributors의 약자인 OVD라고 불림)를 포함시키는 방안을 공개적으로 추진하고 있을 정도로 OTT의 성장세가 방송산업 내부에만 영향을 미치는 단계를 넘어, 규제 당국의 방송 정책에도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지상파방송사들은 안 그래도 포화상태라는 평을 듣는 ‘무수히 많은 유료방송 채널’과의 경쟁도 버거운데, 그간 눈여겨보지도 않았던 IP 기반의 동영상 서비스마저 OTT라는 어려운 이름표를 들고 와서는 상대해 보자고 덤비는 격이어서 여간 심기가 불편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OTT까지 등장하면서, 채널도 많아지고, 콘텐츠도 늘어나고, 플랫폼도 셀 수 없이 많아지는 세상이 도래해도 적어도 아직까지는 변치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 여전히 대다수 한국인들은 TV에 나오는 드라마나 연예 프로그램을 가장 많이 보고 있다는 점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대다수 ‘아시아인들’이 자국의 프로그램 이외에 가장 많이 보고 있는 프로그램은 우리 지상파방송사들을 통해서 방영되었던 프로그램들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이 변하지 않은 사실에 우리 방송사들이 무한경쟁 시대에 생존할 길이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플랫폼의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방송용 네트워크를 면허를 통해 부여받은 이들의 독과점적 지위도 함께 낮아졌지만, 우리 방송사들의 기획, 제작 능력이 낮아졌다는 증거는 별로 없다. 물론 일부 유능한 제작 인력이 새로 진입한 채널이나 플랫폼으로 유출되고 있기는 해도, 여전히 다른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우리 방송 인력들은 우수하다. 중국에서 높은 임금을 제시하며 PD나 작가 등 우리 제작인력들을 데려가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리고 여전히 아시아권에서 한국이야말로 진정한 ‘콘텐츠 왕국’임을 우리 한류 스타들이 지금도 중국에서, 일본에서, 대만에서, 베트남에서, 그리고 태국 등지에서 증명하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질 때는 남보다 앞선 고유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우리 지상파방송사들이 남들보다 더 잘 기획하고, 더 잘 만드는 능력을 갖고 있다면, 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이 최선이란 뜻이다. 아무나 플랫폼을 만들 수 있는 시대라지만, 아무나 ‘사극 정도전’을, 아무나 ‘별에서 온 그대’를, 아무나 ‘무한도전’을 만들 수는 없다. 오직 세상에서 대한민국 방송사들만, 그리고 우리 제작인력들만 이 프로그램들을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만들 수 있다면, 여전히 우리 방송사들은 경쟁력이 있는 것이다.
물론 뛰어난 기획, 제작 능력이 온전하다고 해도, 이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몇 가지 준비들은 필요하다. 무엇보다 프로그램만이 거래단위이던 방송산업의 구조변화를 능동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이미 활성화되고 있는 포맷거래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며, 점차 거래의 단위가 역량있는 제작인력과 같은 생산요소 수준으로 세분화될 것에 대비해야 한다. 프로그램이나 포맷이 거래될 수 있다면, 기획이나 제작능력도 충분히 거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권에서 한국이 가장 뛰어난 기획과 제작능력을 갖추고 있기에 아시아권의 주요 고객들에게 우리 방송사의 뛰어난 프로그램 기획과 제작 능력을 판매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이유이다. OTT의 확산으로 기존 방송과 달리 비디오 콘텐츠의 국경간 이동도 훨씬 쉬워지는 것은 달리 보면 우리의 역량을 탐내는 잠재 고객이 많아지는 현상일 수도 있는 것이다.
OTT의 확산을 기회로 활용하기 위한 또 다른 준비 중 하나는 방대한 시청자 데이터의 활용도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송중계소에서 전파를 보낸 이후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사실상 알기 어려웠던 과거와 달리, OTT를 통한 시청행태는 서버를 통해 실시간으로 저장, 분석이 가능하다는 점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 BBC가 정당한 수신료를 지불한 영국 시청자들에게 ‘아이플레이어(iPlayer)’를 통한 시청을 무료로 제공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를 통한 시청자 반응의 실시간 수집 필요성 때문이라는 점은 그래서 참고할 점이 적지 않다. 그간 우리 방송사들은 초당, 분당 시청률 변화 흐름의 감지를 시청률 조사 업체에 의존해 왔었지만, 아무래도 제한된 표본(모바일과 PC를 통한 시청자들의 미포함 문제, 비실시간 시청의 미포함 문제 등)에 따른 한계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 유효성이 의심받고 있음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통합시청점유율 조사가 이루어지면 분명 나아지겠지만, 단순 시청점유율 조사를 넘어서서 자사의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 데이터를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콘텐츠를 제 값을 받고 파는 것 못지않게, 자기들의 콘텐츠를 이용하는 이들의 반응을 정확히 파악하고, 분석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 될 수 있음을 우리 방송사들이 진정으로 깨닫는 것이야말로 또 다른 ‘중요한 준비’ 아닐까 한다. <끝>
<이 기사는 협회보 제15호 3면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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