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이루어진 미국텔레비전의 디지털전환은 거의 비상사태를 방불케 했다. 매시간, 모든 방송국은 텔레비전의 디지털전환을 알리면서, 준비가 안된 사람들은 컨버터 마련하라고 독촉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텔레비전 디지털전환은 1980년대부터 논의가 시작되어 거의 30년 가까이 추진된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원래 예정됐던 시기를 4개월이나 연장하면서 마침내 전환이 이루어진 사업이다.
또한 마지막에 6억 5천만 달러가 추가되어 총21억 5천만 달러(약2조7천억원)의 엄청난 금액이 투자된 사업으로, 지난달은 그 성패를 결정하는 마지막 단계였다. 다행히 지난 2월과는 달리, 그리 큰 문제없이 전환이 이루어진 것으로 대체적인 평가가 내려져 미국 연방방송통신위원회(Federal Communications omission)를 비롯 관련단체들은 한숨을 놓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이번이 지난 2월과 달리 성공적인 예상과 결과를 낳은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미국 언론들은 세 가지 이유 즉 시간, 돈, 준비를 일등공신으로 들고 있다. 지난 2월의 경우, 부시 정부의 준비부진과 홍보부족으로 혼란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였고, 이에 오바마 행정부는 취임하자마자, 디지털전환을 6개월 연기하자고 의회에 요청, 준비할 시간을 벌었다. 그리고 이 시간 동안 그동안 FCC와 상공부(Department of Commerce)로 나누어져 있던 추진 주체를 FCC로 일원화해서 추진력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었다. 또, 디지털 컨버터와 홍보를 위해 추가로 6억 5천만 달러를 의회에 요청, 부시 행정부 시절에 집행되지 않고 있었던 40달러짜리 컨버터 쿠폰의 지급을 실행시켰다. 전국에 콜센터를 만들고, 현지 자원봉사단체와 결합, 저소득, 노령, 이민자들에게 무료로 컨버터를 설치해주었다.
결국, 이전 텔레비전 전파대를 이미 경매로 팔았고, 비상대비를 위해 그 전파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도 있었지만, 더 이상은 미룰 수도 없다는 위기의식 속에서 진행된 디지털 전환은 미 전역에서 비상채널을 제외하고는 974개 채널이 성공, 3개 채널이 실패한 것으로 집계되었고, FCC를 비롯한 방송국들은 모두 성공적이었다고 현재까지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런 긍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기술적으로는 이번 디지털 전파대에 대한 적응을 두고 시청자와 방송국 양쪽에서 일어났다. 송신탑에서 많이 떨어지거나, 지형이 험한 곳에서는 디지털 텔레비전 전파가 잘 수신이 되지 않아서 문제였다. 특히 기존에는 수신에 문제가 없다가 전환 후, 지상파 채널을 잃어버린 시청자들의 항의가 많았다. 또 전파영역이 디지털 텔레비전 영역이 아닌 전파대와 이웃한 채널을 쓰는 필라델피아의 ABC와 같은 방송국에서는 전파간섭 문제로 전환이 순조롭지 않았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FCC는 채널을 재배정하거나 컨버터나 안테나 교체로 문제를 차근차근 풀어나간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전환은 텔레비전 업계에서 장기적으로 해결해 나가야할 문제를 제기했는데, 우선 이런 불편을 감수하고 수많은 지원을 하면서 디지털 전환을 강행한 배경에는 새로운 전파대에서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매일 드라마나 토크쇼, 시트콤 재방송만 되풀이하지 말고, 미국 국민들이필요로 하는 정보와 공공의 서비스를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제공하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80년대에 디지털 전환을 시작했던 FCC의 Reed Hundt에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번 디지털 전환에 20년 전 텔레비전업계와 새로운 전파영역을 위해 약속한 것 중에서 실현된 것이 뭐가 있냐면서 단기적인 이익에만 치중하는 방송업계를 비판했다.
고작 새로 생긴 채널에 철지난 프로그램을 재방만 한다면, 전파만 또다시 낭비하는 것이라는 논리다. 결국 궁극적인 목표는 화질 개선만이 아니라, 신호의 디지털화를 통해 컴퓨터와 융합하는 서비스의 향상인 것이다. 이런 기대를 가지고 지원한 미국정부와 국민들의 바람이 헛되이 될까 걱정이지만, 사실 상업방송이 지배하고 경비절감만을 외치는 현상황에서 그리 큰 기대를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처음에 디지털 텔레비전을 준비하면서 가졌던 비전이 컴퓨터산업으로 넘어가고, 시청자들은 컴퓨터나 휴대용 기기로 프로그램들을 시청, 결국 텔레비전은 이번 전환과는 무관하게 계속 몰락의 길을 걷는 것은 아닌가하는 비관론은 주목할 의미가 있다.
다음으로는 이번 디지털 전환에서도 나타난 빈부의 격차를 어떻게 해결해나갈까 하는 문제다. 다시 말하면, 컨버터로 신호를 받을 수 있게는 되었지만, 값비싼 HDTV로 즐기는 텔레비전과, 기존의 텔레비전으로 누리는 질의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게다가 난시청지역과 그에 따른 케이블, 또는 위성방송수신의 문제도 풀어야할 숙제다. 디지털 방송 신호가 험한 지리적 환경에 더 많은 편차를 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상황에서의 난시청 지역 시청자들의 불만은 불 보듯 뻔한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새로운 문화를 다 같이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놓고 한바탕 논란이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작지만 간과할 수 없는 문제들도 있다. 그 중 하나는 최초의 계획으로, 물론20년 전이기는 하지만, 이 전환으로 미국의 전자업계가 컨버터와 새 텔레비전을 생산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컨버터는 중국에서, 수상기는 한국에서 만들고 있으니, 남 좋은 일만 했다는 조롱이 나올 만도 한 것이다. 게다가 이번 디지털 전환이 기존의 아날로그 수상기의 퇴출을 가속시킬 것으로 볼 때, 이 오래된 기기들의 처분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다. 특히 환경오염에 대한 관심이 높은 요즘에, 앞으로 수년간에 걸쳐 버려질 수백만대의 텔레비전의 처분은 중요한 문제다. 그래서 벌써 이 중고 수상기를 후진국에 기부하자는 움직임도 시작되고 있다.
요약하자면, 세기의 전환이라고 불리며, 흑백에서 컬러로 바뀐 후 최대의 변화를 겪고 있는 미국의 텔레비전 환경은 중요한 기술문제인 신호의 전환이란 높은 산을 많은 자본과 시간을 투자해 그런대로 안전히 넘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방송업계나 시민, 그리고 정부에게는 아직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비슷한 전환을 준비하고 있는 한국에서도 어떻게 준비하고, 시민들을 교육시키며, 홍보할 것인가 고민해볼 문제다.
이헌율 통신원 hunyul@sfus.edu
2009년 7월 1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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